^*^----명 산(踏山)/仁 山 風 水 踏 山 記

김상헌 김상용선생 묘역

仁山 -세발낙지 2011. 10. 30. 21:55

 

 

1.踏山日時 :2011.10.30.일

 

2.踏山場所 :경기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 산5

 

3.現地日氣 :맑음

 

4.明堂의 特徵  

  1)物形論 : 

  2)明堂內歷(陰,陽宅) :  조선중기 문신이자 대학자인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의 묘이다.상헌의 자는 숙도(叔度),

                호는 청음(淸陰)·석실산인(石室山人), 본관은 안동이다. 시호는 문정(文正),

                극효(克孝)의 아들이며, 상용의 동생이다.

         1590년(선조 23) 진사에 합격하고 1608년(광해군 즉위) 문과 중시에 급제하여 호당을 거치면서
         1623년 인조반정으로 이조참의가 되었으며 청서파의 영수(領袖)가 되었다.
         이어 대사간·도승지·부제학·육조의 판서 및 예문관·성균관의 제학 등을 지냈다.
         1636년 예조판서로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주화론(主和論)을 배척하고 끝까지 주전론(主戰論)을 펴다가
         인조가 항복하자 은퇴하였다.
         1639년 청이 명을 공격하기 위해 요구한 출병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려 청에 압송되었다가
         6년 후에 귀국하고 좌의정에 올랐다.
         효종이 즉위하여 북벌을 추진할 때는 그 이념적 상징으로 대노(大老)라고 존경을 받았고, 1652년 세상을 떠났다.
         남양주 석실서원, 정주 봉명서원, 개성 숭양서원 등에 제향되었으며, 문집으로 『청음집』(40권 14책)이 있다.
         묘역은 봉분을 중심으로 그 앞에 묘비(墓碑)가 있고, 상석과 문인석 등의 석물이 배치되어 있다.
         묘비는 1669년(현종 12)에 건립되었다. 묘갈의 전면에는 김수증(金壽增)이 묘명(墓銘)을 쓰고,
         뒷면은 송시열이 짓고 송준길(宋俊吉)이 썼으며 1671년(현종 12)에 건립한 것이다.

  3)入首龍 :  

  4)坐 向 :  

  5)破 口 :

 

5.踏山後記 :지나가는 길목에 있어서 들렸던 곳이기에 자세한 연구는 다음기회에 하기로 합니다. 

                              

6.현장사진

 

 

 

 

 

 

 

 

 

 

 

 

 

 

 

 

 

 

 

 

 

 

 

 

 

 

1.踏山日時 :2011.10.30.일

 

2.踏山場所 :경기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 산6

 

3.現地日氣 :맑음

 

4.明堂의 特徵  

  1)物形論 : 

  2)明堂內歷(陰,陽宅) :조선중기 문신이자 대학자인 김상용(金尙容: 1561~1637)의 묘이다.자는 경택(境擇),

                호는 선원(仙源)·풍계(風溪),극효(克孝)의 아들이며, 정승 상헌(尙憲)의 형이다.

                본관은 안동이다. 1590년(선조 23) 진사에 있을 때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1617년 인목대비 폐모론이 일어나자 이에 반대하여 벼슬을 버리고 원주로 옮겨 화를 피했다.

         인조반정 뒤 판동녕부사에 기용되고 이어 병조, 예조, 이조판서, 우의정을 역임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 빈궁·원손을 수행하여 강화도에 피난하였다가 성이 함락되자 불을 질러 자결하였다.
         남양주 석실서원을 비롯해 강화 충렬사, 상주의 서산서원, 정주의 봉호서원 등
         여러 서원(書院)에 제향(除享)이 되고 있으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묘역은 부인 안동권씨와 합장하여 동남향인데 봉분 앞에는 묘비, 상석, 향로석이 놓여져 있고
        좌우에는 망주석과 문인석 등 석물이 배치되어 있다.
        신도비는 묘소 입구에 있는데 총높이 360㎝의 거대한 비석으로,
        비문은 아우인 김상헌(金尙憲)이 짓고 대사간 김광현(金光鉉)이 전액(篆額)하였으며
        의금부도사 류시정(柳時定)이 서(書)를 했다.
        특히 이수에는 앞 뒤 양면에 걸쳐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움켜잡고 다투는 모습
        매우 사실적 이어서 조각 표현이 우수하다.
       또 전면의 두 마리 용은 입을 벌리고 있으나, 후면의 것은 입을 다물고 있어 조각상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3)入首龍 :  

  4)坐 向 :  

  5)破 口 :

 

5.踏山後記 :지나가는 길에 들려서 자세한 연구는 다음기회에 하기로 합니다. 

                              

6.현장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