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산(踏山)/명산 산행기

장흥 보림사와 가지산을 답산하고....

仁山 -세발낙지 2011. 6. 6. 18:53

 

산행  일시 :2011.06.06.현충일날

산행  장소 :장흥 유치  

같이한산꾼 :나홀로 산행...

산행  코스 :보림사~보림사동부도~야외학습장~약수터~전망대~약수터~망원석(선돌)~공주이씨묘역~가지산정상

                   ~가지산상봉(삼개봉)~가지산주봉~소나무산림욕장~봉덕송~비자림산림욕장~보림사동부도~주차장(원점회귀)

산행  거리 :4.0km

산행  시간 :4시간(삼겹살파티 점심시간포함)

날        씨 :흐린날씨

이동  수단 :애마로...

산의  특징 :보림사는 가지산(迦智山, 509미터)에서 서쪽으로 달려오던 맥이 방향을 돌려 남으로 뻗어내려 물길과 만나는 곳에 위치한다.

보림사는 산의 얼굴(面)에 해당되는 곳에 자리잡았다.

풍수에서는 산 전체를 살필 때 먼저 어느 쪽이 앞이고 어느 쪽이 뒤쪽인지를 살핀다.

풍수용어로는 이를 용의 면(面)과 배(背)라고 한다.

용의 면(面)은 포근하고 부드러우며 단아한 모습을 주어 유정한 느낌을 준다.

반면에 용의 배(背)는 험준하고 거칠며 불안한 마음 혹은 무정한 마음을 준다.

용의 얼굴(面)에 해당되는 쪽에는 산줄기가 구비구비 완만하게 뻗어내려가면서 많은 마을과 벌판을 만들어 준다.

반면에 용의 등(背)에 해당되는 마을이나 그 생활 터전인 들판이 협소하여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

보림사를 오른쪽 산줄기인 백호가 공손하고 유정하게 보림사 명당 오른쪽을 감싸며 명당 앞으로 지나간다.

물길은 남동방향으로 명당을 감싸며 흐른다.

풍수에서는 물길이 흐르는 형태에 따라서 명당이 형성되는 위치가 다르게 나타난다고 본다.

직선으로 흐르는 물길은 기를 흩어지게 한다.

이는 바람의 흐름을 강하게 하기 때문에 이런 곳에서는 훌륭한 명당이 형성되지 않는다.

좋은 물의 형태는 활의 둥근 모양처럼 굽이쳐 돌아가는 형태이다. 그리고 물이 잔잔하게 흐르는 것이 좋다.

보림사의 경우 물길이 명당을 둥글게 감아 돌면서 잔잔하게 흐른다.

하바드대학 연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15세기에 작성된 <<보림사 사적기(寶林寺 事蹟記)>>에는 가지산의 지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산과 골짜기가 깊숙하고 물은 돌아 흐르며 구름은 확 끼었고

지세는 넓고 평탄하여 당료(堂寮)가 구비되고 법려(法侶)들이 무리를 이루니

그 모습이 상서롭고 빛을 놓아서 불림(佛林)의 별세계이며 금모래인 보배로운 땅이라 절을 보림으로 했다

" 이처럼 '산과 골짜기가 깊고 물이 휘감아 돌아 흐르고 지세가 넓고 평탄'하면 풍수의 기본적인 요건은 갖춘 터가 된다.

산행  후기 :집에서 느즈막이 출발해서 12시부터 산행에 들어갔다.

                바람한점도 없이 후덥지근하니 무지하게 더운날이다.

산행  지도

등산안내지도

산행  사진

 

 보림사가 중심이 됐던 가지산문은 고려조구산선문 가운데에서 가장 두드러진 선문이었다.

                                          삼국유사를 쓴 일연국사도 가지산문의 문도로 알려져 있다.

고려 말에는 가지산문 외에는 모두 쇠퇴했고,

가지산문의 태고국사에 의해 통합되어 오늘의 조계종의 모태가 됐다.

이러한 역사를 지닌 절이기 때문에 국보와 보물 등 귀중한 문화재가 많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원표()가 세운 암자에다 860년경 신라 헌안왕()의 권유로

보조선사() 체징()이 창건하여

선종()의 도입과 동시에 맨 먼저 선종이 정착된 곳이기도 하다.

가지산파()의 근본도량이었으며, 인도 가지산의 보림사,

중국 가지산의 보림사와 함께 3보림이라 일컬어졌다.

경내에는 국보 제44호인 3층석탑 및 석등,

국보 제117호인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보물 제155호인 동부도(), 보물 제156호인 서부도,

보물 제157 ·158호인 보조선사 창성탑() 및 창성탑비 등이 있다.

 

보림사에 들리면 일곱 개의 문화재는 반드시 둘러보아야 한다.

 

 

 

 

 

 

 

 

 

 

 

 

  

 

삼층석탑 및 석등은 국보 제44호다.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남북 두 탑이 마주서 있고, 가운데에 석등이 있다.

두 탑의 구조 양식이 서로 같고 아름다운 신라식 일반형의 탑이다.

 


 

▲보림사의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동부도는 보물 제155호, 보조선사 창성탑은 보물 제157호로,

 화강석이며 신라 헌강왕 10년(884년)에 세워졌다.

보조선사 창성탑비는 보물 제158호로 역시 화강석으로 884년에 세워졌고,

귀부 비신 이수가 모두 갖추어져 있다.

서부도는 보물 제156호로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졌으며 화강석이다.

목조 사천왕상은 보물 제1254호다.

 

 

 

 

 

 

 

 

 

 

 

 

 

 

 

 

 

 

 

 

 

 

 

 

 

 

 

 

 

 

 

 

 

 

 

 

 

 

 

 

 

 

 

 

 

 

 

 

 

 

 

 

 

 

 

 

 

 

 

 

 

 

 

 

 

 

 

 

 

 

 

 

 

 

 

 

 

 

 

 

 

 

 

 

 

 

 

 

 

 

 

 과보림사(過寶林寺) 보림사를 지나며

                                                           김삿갓 김병연(金炳淵)

 

 

 

               궁달재천 개이구(窮達在天 豈易求) = 빈궁과 영달은 하늘에 달렸으니 어찌 쉽게 구하랴

            종오소호 임유유(從吾所好 任悠悠) = 내가 좋아하는 대로 유유히 지내리라

            가향북망 운천리(家鄕北望 雲千里) = 북쪽 고향 바라보니 구름 천 리 아득한데

            신세남유 해일구(身勢南遊 海一漚) = 남쪽에 떠도는 내 신세는 바다의 물거품일세.

            소거수성 배작추(掃去愁城 盃作箒) = 술잔을 빗자루 삼아 시름을 쓸어버리고

            조래시구 월위구(釣來詩句 月爲鉤) = 달을 낚시 삼아 시를 낚아 올리네

            보림간진 용천우(寶林看盡 龍泉又) = 보림사를 다 보고나서 용천사에 찾아오니

            물외한적 공비구(物外閑跡 共比丘) = 속세 떠나 한가한 발길이 비구승과 한가지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