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산(踏山)/仁 山 風 水 踏 山 記

쌍릉

仁山 -세발낙지 2012. 6. 3. 21:37

 

1.踏山日時 :2012.06.03.일

 

2.踏山場所 :전북 익산시 석왕동 산55.56번지

 

3.現地日氣 :맑 음

  

4.明堂의 特徵  

  1)物形論 :특별함이 없이 남향으로 모양새만 갖추었슴.

  2)明堂內歷(陰,陽宅) :대왕묘.소왕묘란 이름은 무덤의 규모로 알려진 것이다고함.

                            이 곳을 백제 무왕(서동)과 그 의 아내 선화공주 능으로 추정하는 것은 부여 능산리의 백제왕릉과

                            동일한 석실분으로 백제말기의 형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에는 청주한씨 종중에서 고조선 준왕의 남천설과 결부항 시조의 묘로 받들고 석물을 갖추고

                            매년 시제를 지내고 있다.

                            그리고 백제의 30대무왕은 백제의 마지막왕인 의자왕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신라 진평왕의 셋째딸인 선화공주이다.

  3)入首龍 :평지룡

  4)坐  向 :남향(석물이나 상석같은 것이 없어서 좌향을 제대로 살필 수가 없음.

  5)破  口 :길득파

 

5.踏山後記 :쌍릉은 무왕과 그 왕비의 능으로 알려져 있다.

               신라 진평왕의 셋째딸 선화공주와 서동의 아름다운 이야기...

               후일 백제 30대 무왕이면서 백제 마지막왕인 의자왕의 아버지가 된다.  

               2008년도 무렵에는 석물도 있고 상석도 있었으나 지금은 어찌된 영문인지 하나도 남김없이 다 치워버렸다. 

6.현장사진

 

 

 

 

사적 제87호. 남북으로 2기의 무덤이 있는데 북쪽의 것을 대왕묘, 남쪽의 것을 소왕묘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들 무덤이 마한(馬韓)의 왕릉이라는 전설 때문에 이 지역 사람들은 이곳을 왕묘리(王墓里)라고 부르기도 하며,

1915년 야쓰이[谷正濟一]가 조사했다. 남향인 두 무덤은 외방[單室]의 판석식돌방무덤[板石式石室墳]으로 묘실의 네 벽과 바닥,

 천장이 모두 잘 다듬어진 화강암 판석으로 축조되었으며, 널길[羨道]은 널방[玄室] 남벽 한가운데에서 시작된다.

널방의 좌우 벽과 천장 사이에 긴 장대석을 안으로 기울게 끼워 널방 단면이 육각형을 이룬다. 널길·널방 입구는 모두 커다란 판석으로 막았다.

 대왕묘의 봉분은 지름 30m, 높이 5m 크기로 봉분 한가운데 지하에 돌방이 있다.

 

널방은 남북이 긴 장방형으로 길이 3.8m, 너비 1.78m, 높이 2.27m이고 널길은 길이와 너비 각각 1.0m, 높이 1.5m이다.

널방 바닥에서 봉분정상부까지의 높이는 7.2m이다. 널방 바닥 한가운데에 설치된 널받침[石棺臺]의 길이는 2.7m, 너비는 0.85m이다.

널[木棺]은 조사 당시 대부분이 썩은 채 뚜껑 관고리의 8엽연꽃형장식밑동쇠를 비롯한 금속제 장식물과 목재 일부만 남은 상태로 발견되었는데

 현재 복원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복원된 널의 길이는 2.4m, 너비는 0.76m, 높이 0.7m이다. 소왕묘는 대왕묘보다 규모가 작아 봉분의 지름이 24m, 높이 3.5m이며

 지하에 설치된 돌방 바닥에서 봉분정상부까지의 높이는 5.5m이다. 널방의 길이는 3.2m, 너비 1.3m, 높이 1.7m이다.

두 무덤은 백제 말기인 7세기의 판석식돌방무덤인 점과 부근에 백제 무왕(武王) 때 창건된 미륵사지(彌勒寺址)가 있는 점 등으로 보아

백제 무왕과 그 왕비의 능묘일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