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산(踏山)/仁 山 風 水 踏 山 記

명나라 사신 주지번이 소점한 송영구 묘

仁山 -세발낙지 2012. 6. 3. 21:34

 

 

1.踏山日時 :2012.06.03.일

 

2.踏山場所 :전북 완주군 봉동읍 제내리 1116

 

3.現地日氣 :맑 음

  

4.明堂의 特徵  

  1)物形論 :와혈 

  2)明堂內歷(陰,陽宅) : 명나라 사신 朱之蕃이 소점한 瓢翁  宋英耉 墓

                             고속도로 익산 인터체인지 일대에는 진천(鎭川)송씨의 선산이다.

                             선산에는 아주 아름답게 자란 오래된 해송들이 빽백하게 서 있다.

                             이렇게 잘 자란 소나무 밭도 그리 흔하지 않다.이 소나무들은 송씨 집으로 시집 올 

                             때 친정아버지인 최상중이 딸에게 "시집갈때 무엇을 주면 좋겠는냐 ? " 그러자

                             그 딸은 "변산 솔씨 서말만 주세요"라고 하였다.

                             인터체인지 일대의 보기좋은 해송들은 시집 올 때 가지고 온 최씨할머니의 솔씨가 성장한 것이다.

 

 

 

명나라 사신 주지번이 소점한 표옹 송영구 묘

 

                         갈매봉에서 이방(離方)으로 발원(發遠)한 주룡(主龍)이 곤방(坤方)으로 머리를 돌리면서 우선(右旋)

                            용맥(龍脈)에서 손방(巽方)으로 짧게 낙맥(落脈)한 용진처(龍盡處)에서 결지(結地)한 곳에 표옹(瓢翁)

                            송영구의 묘가 자리잡고 있다. 그 래맥(來脈)을 살펴보면 상령사(上嶺蛇) 즉 상추하세(上騶下細)한

                            래세탄완처에서 결지되고 우측으로 하수사가 뻗어서 혈지를 지탱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혈처로 분맥하기전에 분지된 일맥이 좌청룡을 형성하고 혈후로 뻗어나간 맥에서 분지된 일조맥이 우선

                            하면서 혈지를 회포하고 있다.근거리에서 회포하던 외청룡이 안산을 유정하게 형성하였고,첨원탁립한

                            용약고룡이 원원회포하던 중 특기탐랑성봉개면공립하여 다정하ㅔ 혈처을 맞이하는 조산을 형성하고

                            있다.

       


  瓢翁(표옹) 宋英耉(송영구,1556-1620)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진천(鎭川). 자는 인수. 호는 표옹·일표(一瓢)·백련거사(白蓮居士)

 시호는 충숙(忠肅).  성혼의 문인으로 1584년(선조17) 친시문과(親試文科)에 급제,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등을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도체찰사 정철의 종사관,

1597년 정유재란 때는 충청도 관찰사의 종사관이 되었다.

지평(持平) 때 성절사(聖節使)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헌납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600년 이조좌랑에 이어 청풍군수 등을 지내고,

1607년 성주목사로 나갔으나 권신 정인홍의 미움을 사 파직당했다.

 

 

1610년(광해군2) 사간에 이어 필선(弼善)으로 선조실록 편찬에 참여했으며,

 1611년 경상도관찰사를 지냈고, 1616년 병조참판이 되어 1618년 폐모론을 반대,

정청(庭請)에 불참하고 파직당했다. 전주 서산사(西山祠)에 배향되었다

 

 


  3)入首龍 :신술룡(辛戌龍)

  4)坐  向 :신좌을향(辛坐乙向)

  5)破  口 :좌선수(左旋水),손사파(巽巳破)

 

5.踏山後記 :답산의 중요논점은 언제나 그랬듯이 형기가 갖추어진 다음 이기를 보는것이 현장을 다니면서 항상 느낀점이다.

               형기가 좋으면 이기는 당연히 따라다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번 답산도 마찬가지다 형기가 좋으니 이기도 당연지사 그런데 같은 내룡에 다른 좌향은 어떻게 해석을 해야

               될까 싶은데요 그것은 시기와 때가 중요한 것 같다.

               형기와 이기 아주 잘 맞는다 해도 시기와 때가 맞지 않으면 정혈에 들었다 할 수 없듯이 모든부분이 혼현일체가

               되어야만 역사를 이루는 같다.

                               

6.현장사진

 

 

 

*. 진천송씨(鎭川宋氏)


우리나라 송씨의 선대는 중국 당나라 사람 송주은(宋柱殷)으로

그의 후손 송자영의 세 아들 대에서 3개의 본관으로 갈린다.

첫째 송유익의 후손은 여산송씨,

둘째 송천익의 후손은 은진송씨,

세째 송문익의 후손은 서산송씨가 된다.

송씨는 이들 본관을 합쳐 모두 29개의 본관이 있다. 

진천송씨의 시조는 송주은의 7세손 송순공(宋舜恭)이나,

계대가 불명하여 고려 때 평장사를 지낸 송인(宋仁)을 1세조로 한다.

1125년 충북 진천군 덕산면 두촌리에서 출생한 송인이 진천백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진천을 본관으로 삼았다.

송인의 아들 송원겸이 고려 때 평장사에 올랐으며,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한 송언기는 송원겸의 손자로 감찰어사를 지냈으며,

송언기의 아우 송언상은 대장군을 지냈다.

 

 

 

 

 

 

 

 

 

좌청룡 선익부분

 

 

 

 

 

 

명나라 사신 주지번이 소점한 송영구의 묘

 

 

 

 

 

 

 

 

 

유정하게 펼쳐진 안산

귀부의 형태를 제대로 갖추고 있다.

 

 

 

 

 

 

좌    향

 

 

 

 

 

 

 

파 구(破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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