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踏山日時 :2013.05.26.일
2.踏山場所 :경기 화성시 안녕동 산1-1
3.現地日氣 :약간흐림(초여름날씨)
4.明堂의 特徵
1)物形論 : 반룡농주형(盤龍弄珠形)
2)明堂內歷(陰,陽宅) :21대 영조의 둘째아들이자 22대 정조의 생부(1789년 7월 양주 배봉산에서 천장(이장)옥룡자도선의
평에 의하면 반룡농주형으로 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노는 형상이라고 하는곳이다.
형국이 복룡대지로 용혈사주향이 좋고 아름다워 천리길을 간다해도 만날 수 없는 자리로 천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하는 자리라고 소문이 나 있는 곳이다.
3)入 首 龍 :
4)坐 向 :좌향은 봉분을 올라갈수 없어서 정확한 좌향은 보지못함.
5)破 口 :당문파(當門破)
5.踏山後記 :초여름인 만큼 파릇파릇하게 잔디가 올라와 시원한감을 준다.
사도세자(장조)의 융릉으로의 천장과 절손에 관한 의문을 재기하는 학자들이 많은데 그 부분에 대해 연구가
더 새심하게 필요한 부분이다.
정조대왕이 풍수지리를 터득하고 연구하여 전국 명사들을 불러 모아 대명당을 잡아 부친인 사도세자를
옮긴자리가 현재 화성시 안녕동 융릉이다.
천장을 하면서 혈토가 명당의 정혈처임을 증명하는 홍황자윤의 최고의 혈토가 나와 지고지선의 대명당의 최적의
정혈처에 안장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자리가 정혈처임을 증명까지 하는 혈토까지 나왔는데 천장한지 49년만에 절손이 되는 화를 면치 못하고 있는지
연구대상이며 정말 궁금 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친족보다 외부요인에 의해서 잘 못되고 있는것은 아닌지 연구해 볼 필요성은 있다.
그리고 직계가 이여가질 못하는것을 보면 분명 어디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 들어난다....?
아님 건릉(정조대왕)의 자리가 .....?
6.현장사진
화성 융릉과 건릉
사적 제206호
이곳에는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장조)와 어머니 혜경궁홍씨(현경왕후)를 모신 융릉,
그리고 정조와 그의 비 효의왕후를 모신 건릉이 있다.
처음에는 정조가 당시 양주에 있던 아버지 묘(영우원)를 이 곳으로 옮기고 현릉원이라 하였으나,
고종 때(1899) 황제로 추존하면서 융릉으로 바꾸었다.
정조가 아버지 곁에 묻히기를 원하여 부자를 한 구역에 모시게 되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억울하게 죽어간 아버지의 넋을 위로하고자 했던
정조의 효성으로 빛어지 화려하고 아름다운 왕릉을 만날 수 있고,새로운 조선을 꿈꿨던
개혁 군주의 왕릉도 만날 수 있다.
주변에는 융릉의 원찰인 용주사가 있다.
옛날 왕릉의 제작과정자료를 구하지 못해서 미비한 자료지만 올려본다.
융,건릉자료실에서 발췌함.
융릉(사도세자,장조)에서 건릉(정조)으로 넘어가는 산책로
'^*^----명 산(踏山) > 仁 山 風 水 踏 山 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이장군 (0) | 2013.05.25 |
---|---|
건릉 (0) | 2013.05.25 |
지나가는 길에 용맥 (0) | 2013.04.14 |
초계정씨 묘-연화부수형 (0) | 2013.04.03 |
의암 논개(신안주씨)묘역과 최경회 장군 (0) | 2013.0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