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踏山日時 :2011.10.29.토
2.踏山場所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목왕리 산49
3.現地日氣 :맑음
4.明堂의 特徵
1)物形論 : 괘등혈,청학포란형(청계산자락)
2)明堂內歷(陰,陽宅) : 조선개국 공신으로 1등에 책록되고 문하시중에 제수되었으며,상락백의 작위를 받았다.
익원공 김사형(金士衡1333~1407)선생의 묘역이다.조선전기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安東),자는 평보(平甫)
호는 락포(洛圃)이다.
김사형은 문신으로 고려 공민왕때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을 하고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세우는데 공을 세운 인물이다. 태조 5년(1397년)에는 좌정승으로서 오도병마도총처치사
(五道兵馬都統處置使)가 되어 대마도를 토벌하러 갔다가 이듬해 환도하였다.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 때에는 백관을 거느리고 대궐에 나아가 장자에게 선위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정조 즉위를 도운 공으로 정사공신 일등에 책봉되었다.
김사형의 묘는 조선초 육각형의묘이며,부인 죽산박씨와의 합장묘이다.
봉분은 길고 납작한 화강암으로 둘레석을 둘렸다.묘역에는 묘표,상석,향로석,장명등 각 1기 문인석 한쌍이 있고,
묘역에서 약간 떨어진 마을 입구에 김사형의 신도비가 있다.묘표는 원래의 것이 없어져서 다시 세운것이다.
사모지붕을 한 장명등은 앞뒤에 창이 넓게 뚫려있고, 양옆은 막혀 있어 조선 전기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묘의 양옆에 서 있는 문인석 역시 조선 전기 문인석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특히 수염이 표현된 것이 주목된다.
김사형은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조선 초기에 중요한 활동을 한 역사적 인물이다.그의 묘역은 봉분에 둘러진 3단
둘레석이나 창이 넓은 장명등,홀을 들고 있는 문인석 등 조선 전기의 양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문화재자료 제 107호)
3)入首龍 : 을진용(乙辰龍)
4)坐 向 : 을좌신향(乙坐辛向)
5)破 口 : 양수협출,손사파(巽巳破),을진파(乙辰破),左旋水長大(다시연구)
5.踏山後記 : 답산을 다녀보지만 갈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 들고 짚세기 세대에 어쩜 그렇게도 지형에 대해 해박하게
알아서 모셔는지 궁금도 하다.또 묘역에 대해서는 그 마을 웃어른신네이 속속들이 다 알고 계시고
상세한 설명도 곁들어 주는데 오늘은 만나지 못했다. 김사형묘역도 한 때 도굴사건에 휘말리기도 했었다 한다.
특히 김사형묘역은 장인과사위가 상,하로 같이 모셔져 있는것이 특징이다.김사형선생 사위가 지관이었다고
한다.그래서 장인사후에 자리를 잡아서 모셨다고 함.그러나 어느것이 진혈인지는 판단하기가 난해하다.
아직 거기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나보다..괘등혈이라고도 하고 청학포란형이라고도 하기 때문에 진혈의 위치는..
다음 답산때는 진혈의 위치가 눈에 들어올련지...
등잔자루에 해당하는 결인처가 길기때문에,결인처가 길면 혈이 멀리 형성된다고 하니...참고 바랍니다.
그리고 백호쪽과 주산도 라성이 보인다,라성이 보이면 횡재가 있다고 한다.
묘의 봉분에 청태가 끼었는데,이는 안개와 바람을 타면 청태가 낀다고 한다.
6.현장사진
공의 호는 낙포(洛圃)이고 안동부인(安東府人)이다.
여조도원수 추충정란 정원공신 삼중대광, 도첨의중찬, 판전리사사, 세자사,
봉 상락군 개국공 김방경(金方慶) 시 충렬공의 현손, 대광상락군 김순(金恂) 문영공의 증손.
추성보절동덕익찬삼한벽상공신 삼중대광수사도 첨의사사 좌정승 예문관 대제학 상주국 복창부원군,
상락후 김영후(金永煦) 정간공의 손(孫).
증 보국숭록대부 영삼사사 상락군 김천(金 )의 자(子).
고려 충렬왕 2년(1341년)에 출생하였다.
고려의 벼슬은 단성보리공신 삼사좌사 동판도평의사사사,
조선왕조에서는 순충분의좌명동덕개국공신.
추충협찬정란정사공신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좌정승 겸
삼훈관 영경연사 감춘추관사 세자사.
상락백부원군. 식읍 1천호 식실봉 300호,
시호는 익원공이시다.
태종 7년(1407년) 7월 30일에 향년 67세로 서거하였다.
조준과 더불어 8년 동안 정승에 있었으며 처음 벼슬할 때부터 운명할 때까지
한번도 탄핵을 당하지 않았다.
강직하고 명확한 성품으로 백성들로부터 칭송이 자자하였다.
고려조에 음보로 연계관직이 되고 감찰규정이 되었다.
공민왕 9년(1360년) 성균관 문과급제하여
고공산랑이 되어 고을에 조세를 공평하게 부과하여
엄하게 다스려 백성들의 칭송이 자자하였다.
1377년 집의가 되어 동료 조준, 안익, 김주 등과 더불어 인물을 얻었다고 칭송이 있었다.
개성부윤이 되고 단성보리공신호를 받았다. 창왕 즉위년 1389년 가을 이성계가 집정하여
각 부처에 대개혁을 추진할 때 공을 중용하였다.
사전을 개혁하는 지방정치를 융성케 하고자
관백의 지위를 격상시켜 삼품 이상 관을 보임하고 안렴사를 도관찰출척사로 바꾸고
공은 교주 강릉도(交州 江陵道)를 맡아 공명하게 다스렸다.
공양왕 2년(1390년) 지밀직사사 겸 대사헌이 되고 승진되어 동지경연사가 되어
왕이 장차 천도하고자 함에 시위제사와 도위군관이 병졸을 거느리고 나아가
백성의 주식이 어렵고 조정이 극도로 혼란하므로 관에서 논쟁을 진정시켰다.
또 우현보, 권중화, 장하 경보의 죄를 탄핵하여 추방하고 이때 관공서가 양파로 나뉘어
서로 탄핵함으로써 관원이 텅비자 병중에도 관에 나아가 대사헌의 중임으로
정몽주, 당인 정우 이색, 최운사와 이훈 등을 파직시켜 물의를 진정시켰다.
이로 인하여 지문하부사가 되고 삼사좌사 동판도평의사사사에 올라 본 조정에 들어갔다.
태조원년 1392년(조선개국)
7월 이성계(李成桂)를 추대하여 조선이 개국되자
승문하시 찬성사 겸 판상서사사 겸 병조전서 응양위상장군에 제수되었다.
7월28일 좌명공신 문하시랑 찬성사 판팔위사 상락군에 봉하고
8월16일 좌명개국공신신호를 받았다, 이는 조선왕조에서 책훈되는 14인 공신의 한분이다.
8월19일 공신들이 왕에게 잔치를 베풀고 공신의 부인들도 중궁(왕비)에게 시연하였다.
12월 문하시중을 제수하고 상락백 식읍1천호 식실봉 3백호의 봉작을 받았다.
태조 5년(1396년)
문하 우정승으로 오도병마도처치사에 임명되어 대마도원정군을 발하였다.
도주로부터 조공의 약속을 받고 익년 정월에 개선하였다.
태조 6년(1397년)
10월6일 세자의 혼인을 관장하는 가례도감을 세우고
영삼사사 이화 우전승 김사형을 제조를 삼았다.
12월16일 김사형으로 겸판사헌부사를 삼았다.
태조 7년(1398년)
1월11일 좌정승 조준과 우정승 김사형이 노비 판정도감의을 맡았다.
4월26일 신도가 낙성되어 좌정승 조준과 우정승 김사형에게 신도팔경병풍을 하사하였다.
윤5월18일 양정에서 봉화백 정도전, 참찬문하 이지란, 월성군 설장수,
문하찬성사 성석린을 불러 사신으로 갔던 일을 위호했는데.
판문하부사 심덕부, 영삼사권중하 좌정승 조준, 우정승 김사형, 의성군 남은이 잔치에 배석하였다.
이들 기로는 왕조의 중흥에 공효가 지대하면 이의 기능을 조직 활동에 표출되었다.
9월1일 비로소 친황자를 공으로 삼고 종친후로 정1품을 백으로 삼아 봉작제르 이루니 김사형을 우정승으로 삼았다.
왕자의 난에 입궐하여 적장자를 세자로 삼기를 청했다.
정종이 내선을 받자 공을 논하여 1등을 삼고 동덕정란시공신호를 받고 우정승으로 삼았다.
정종 1년(1399년)
6월27일 우정승으로 명나라 건문황제 등극을 축하하는
하사가 되어 가서 정종의 선위 사실을 승인받았다.
12월 왕의 허락을 받아 사직을 했다.
태종 1년(1401년)
3월 태종이 즉위한 후 좌정승이 되었다.
태종 2년(1402년)
혼일강리도(混一彊理圖)를 이무(李茂),이회(李檜)와 같이 제작하였다.
10월 사임하니,영사평부사를 삼고 달포가 지나 부원군이 되고 사저로 나갔다.
태종 5년(1405년)
64세로 기영회(기로회)에 입회하였다.
태종 7년(1407년)
7월에 향수 67세로 졸하니 시묘3일 유자부대언 윤수 치제하고,
시호는 익원공이다.
아들은 둘이며,육(陸)은 동지중추공 승(陞)은 밀직사사공이다.
김사형묘역 위쪽에 있는 묘인데,
김사형은 안동김씨인데, 평산신씨묘이면 처가쪽 집안묘 인듯...
2011.10.29~30.경기도양평 익원공김사형묘역에서...
'^*^----명 산(踏山) > 仁 山 風 水 踏 山 記'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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