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산(踏山)/仁 山 風 水 踏 山 記

광산김씨 발상지

仁山 -세발낙지 2011. 6. 13. 11:31

 

光 山 金 氏 發 祥 地

1.踏山日時 : 2011.06.12.일

2.踏山場所 : 전남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 204

3.現地日氣 : 초여름날씨 - 모내기철 

4.明堂의 特徵  

  1)物形論 : 봉황포란형이라고 한다. 

불태산을 화산으로 시작하여 토산으로 내려와 금성 노적봉으로 떨어져 수성을 이루는곳(화생토생금생수)

  2)明堂內歷(陰,陽宅) : 광산김씨 시조공의 사우 평장사(光山金氏 始祖公의 祠宇 平章祠)
    이 곳 평장동은 한국전통 명문가의 얼과 혼이 살아 숨쉬는 광산김씨 발상지이다.  
   시조 신라왕자공 김흥광이 신라의 종말을 예지하고 왕자의 지위를 버린 채 이 곳에 
   둔세우거하여 후손들의 번영을 마련하여 주신 개기 유허지이다.
   성조의 개기 이래 후손 중에서 평장사가 많이 나와 세상 사람들이 이곳을 평장동이라
   부른다.
   평장동은 노령산맥 태조봉을 조산으로 하여 서남으로 수백리 굽이쳐 내려온 산맥의
   정기가 불대산 소조봉에 이르러 기와 창을 세워 놓은 듯한 서른 여덟 개의 장군봉으로
   웅대하게 둘러 싸여 힘차게 뻗어 내려와 평장사에 이르러 기맥이 응결하고 장엄하게
   우뚝 솟아있는 호남의 명산 서석산을 안대하여 수백리를 흘러온 황룡강 물과 서로
   만나 함께 안고 흘러가니 산맥과 물줄기가 살아서 움직이는 형상이다.

   시조공의 사당을 중심으로 좌우로 산맥이 다시 갈라져 백호의 줄기는 여덟겹이오,
   청룡의 줄기는 일곱겹으로 그 형태를 보면 전체가 태극형을 이루고 좌우 청룡 백호의
   날개가 균형을 맞추었으며, 주위의 산맥과 봉우리가 모두 명산으로 금태산, 서석산,
   양림산, 삼각산, 건지산, 환등산, 삼선산 등이 우뚝 솟아있고 문필봉이 겹겹이 쌓여
   있다.

   불대산 봉우리를 봉황의 머리에 비유하여 전체의 전경을 봉항이 알을 품고있는 형상
   으로 표현하여 비봉포란형이라 하며, 용혈사수를 두루 갖춘 용진혈적으로 절의와
   공명이 끊이지 않을 비기에 전하는 호남 제일의 명당이다.

   풍수학의 극치를 자랑하는 평장사는 원경에서 바라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올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하고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조망은 점승적 최고조의 자연 풍광으로
   조화의 섭리와 관용의 이치를 일깨워주는 호연지기 양생의 최적의 명소이다.


△ 신라왕자공 유허지 산세도


  3)入首龍 : 乾亥龍 

  4)坐 向 : 亥坐巳向

  5)破 口 : 巽破(短破) - 支地不犯

 

5.踏山後記 : 과거없는 오늘이 있을 수 없고,

오늘 없는 내일 또한 있을 수 없다.

과거의 역사를 통하여 오늘의 삶을 진단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창조하자. -광산김씨 대종문에서-   

불태산을 조산으로 안산이 가까운데 아미사이며,머얼리 무등산이 한눈에 보인다.

청룡,백호가 3겹으로 보이며, 청룡쪽이 약간낮으나 뒤쪽에 저수지가 있어 무난하다.

현재 제각자리에는 단만 있어으나 건립공사로 인해서 제각을 세우고 깔끔하게 단장을 했다.

이 제각을 건립하면서 현공풍수 최명우선생이 지사로 참여를 했다. 

옛날에는 대우그룹 김우중 전사장이 제를 올릴때는 거리거리마다 막걸리가 넘쳐날정도 였다고 합니다.                          

6.현장사진

 

 

 

 

 

 

 

 

 

 

 

취 선 당

 

 

 

△ 유허비각 (전라남도 지정 문화재 기념물 200호)

 

지금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앞에 쳐다보면 맨 뒤에 서 있고

뒤를 돌아다보면 앞에 서 있다.

 

 

 

 

           遺 墟 碑 銘(유허비명)

           우리의 시조할아버지는 신라의 왕자로서 국운(國運)이 기울어질 때
           이곳에 둔거하시니 명철(明哲)하신그 지감(知鑑)을 성조(聖朝)에서 찬미하였다. 
           빛을 감추고 덕(德)을 쌓아 후손(後孫)에게 끼치어 팔세(八世)의 평장(平章)이
           동사(東史)에 빛난다. 
           아름다운 그 지명(地名)도 실로 이러한 까닭이다. 팔백년을 내냈어도
           유허(遺墟)는 남아있어 은은히 보이는 듯 하고, 그 상모(想謨)하는 마음 끝이 없다.
           종인(宗人)들과 의논하여 돌을 세워 기록하니 맑은 향기와 유구한 자취가
           보이는 듯 감돌고, 불대산(佛臺山)을 배경(背景)으로 서석산(瑞石山) 바라보니
           영험(靈驗)한 산 정기(精氣)와 지운(地運)이 응기(應起)하여 보호(保護)한다. 
           백천만년의 역사속에 길이 전하리라.
                            - 1739년 김 회 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