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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소리로 부르지 않아도 사람이 모인다

仁山 -세발낙지 2009. 12. 9. 10:51

큰소리로 부르지 않아도 사람이 모인다

 
 
서늘한 지형에 궁합이 맞는 찬 음식 판매
몸 보호 위해 건물엔 자연냉방 장치 마련
 
고제희
대동풍수지리학회 대표이사
 
⑬ 줄 서서 밥 먹는 식당-초리골 초계탕

경기도 서북단에 위치한 파주는 조선 초 원평군(原平郡)으로 불리다가 이곳이 고향인 정희왕후 윤씨가 세조 비로 간택되자 목(牧)으로 승격되면서 오늘날의 파주가 되었다. 북쪽으로 임진강을 접한 파주는 한양에서 개성과 북쪽 지방을 오가는 길목에 위치해 예로부터 관로가 잘 발달된 고장이다. ‘초계탕’ 집은 비학산 아래의 초리골에 위치하는데, 노고산에서 파평산으로 뻗은 산능선이 초리골의 북동방을 막아섰고, 그 중간쯤에 솟아난 봉이 긴 지맥을 남서방으로 뻗었으며, 이 지맥이 갈곡천의 지류를 만나 법원읍이 들어선 넓은 평지를 만들어 놓았다. 서울에서 1번 국도(통일로)를 타고 문산 방면으로 향하면 월롱역을 지나 문산천이 나타나고, 내를 건너면 곧 파주역이 우측에 보인다. 파주역을 끼고 우회전해 7번 군도로를 따라 동진하면 어느 새 법원읍에 다다른다. 여기서 법원읍 동쪽에 위치한 시립법원도서관 뒤쪽으로 가면 초리골로 진입하는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 우측으로 주차장이 널찍하고, 지붕에 ‘초계탕’이란  커다란 입간판이 내 걸린 음식점이 나타난다.
 
이 집이 바로 ‘줄을 서야 밥을 먹는 식당 풍수 답사’의 첫 번째 목적지인 ‘초계탕’ 집이다. 홈통처럼 땅을 둥글게 파고 조성한  연못에는 물을 얕게 가두었고, 그 연못 중앙에 기둥을 세운 뒤 건물을 세웠다. 사각형으로 지은 이층 건물 중 아래층은 식당이 자리하고, 위층은 살림집으로 쓰인다.
 
초리골 입구에는 옛날에 여우가 많이 살았다는 여우골이 있고, 또 연못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초호쉼터로 변해 버렸다. 이 쉼터는 호수 가운데 커피숍이 있어 한 잔에 차를 마셔도 분위기가 고상한데, 지금 초계탕 집이 현재 위치로  이사하기 전 16년 동안 세 들어 살며 세간의 명성을 쌓았던 건물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연못 위에 놓인 아치형 다리를 건너 식당 안으로 들어가면 입구에서 메밀부침을 부치던 주인이 ‘어서 오세요!’하며 먼저 인사를 건넨다. 주인은 바로 수백 번의 실험과 실패를 거듭한 끝에 오늘날의 ‘초계탕’을 개발해 특허까지 받은 김성수(金聖洙, 54세) 사장이다. 식당 안쪽의 처마에는 ‘무성호인’이란 휘호가 손님을 맞이하는데, 이 글은 선주석이란 분이 쓴 것으로 ‘큰 소리를 내 부르지 않아도 사람이 모인다.’라는 뜻이 담겨있다.
 
초계탕(醋芥湯)은 초(식초), 계(겨자), 탕(육수)을 가리키는 말로, 겨자를 평안도 사투리로 계자로 부르며, 오이초절임과 겨자채무침에다 육수를 부었다는 뜻이다. 주된 재료인 닭에 식초와 겨자를 넣고 기름기와 냄새를 제거해서 차고 담백하게 만든 음식인데 예로부터 대궐이나 양반가에서 먹던 음식으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명맥이 끊어져 버렸다. 그러자 김 사장은 옛날 궁중에서 먹던 초계탕에 기본을 두고 평양냉면을 만드는 방법을 가미해 새로운 초계탕을 개발했는데, 이 음식은 얼음을 넣어 시원하게 먹기 때문에 담백한 맛이 으뜸이다. 또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큰 그릇에 새콤달콤한 육수를 담고, 여기에 기름기를 쏙 빼고 잘게 찢은 닭고기와 야채를 담근 뒤 고기와 야채를 함께 떠먹게 했으며, 나아가 시원한 물김치와 고소한 메밀부침을 함께 먹게 해 그 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따라서 ‘초계탕’은 재료나 방법에서 예전 것과는 약간 다른 방식이나 전통음식의 기본을 살려 새로운 음식을 만들겠다는 김 사장의 고집스런 비법과 철학이 빚어낸 현대식 퓨전 요리라 말할 수 있다.
 
초계탕은 얼음을 띄워 먹는 찬 음식이라 뒤탈이 나지 않으려면 우선 몸을 따뜻이 보호해 줘야 한다. 그래서 뜨거운 여름날에도 초계탕 식당 안에는 에어컨이 없고 선풍기만 틀어 놓는다. 또 식사를 마치면 몸을 위해 반드시 메밀 끓인 뜨거운 육수를 먹도록 권한다. 육수는 몸을 따뜻하게 달래주고 배탈 걱정을 없애주기 때문이며, ‘뜨거우니까 조심하세요’라는 말은 꼭 들려준다고 한다.
 
따라서 초계탕 집이 들어설 입지 조건은 우선 음식이 쉬 상하지 않도록 통풍이 잘되는 장소가 좋고, 여름에도 에어컨 없는 실내에서 더위가 느껴지지 않도록 여러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초계탕 집은 태양에 의해 주차장 온도가 올라가자 아스콘 대신 자갈을 깔았고, 연못 한가운데에 건물을 지어 연못 바닥에서 시원한 기운이 올라오도록 했고, 분수 시설을 지붕에 설치해 물이 건물 사방에서 폭포처럼 떨어지도록 고안하였다.
 
 
그 결과 식당 안은 온도가 바깥보다 3∼4도 정도 낮아 한 여름에도 23∼25도를 유지할 수 있으며 창문을 열면 오히려 시원하다고 한다. 또 지붕 처마를 2m 정도 길게 낸 것은 대류 작용으로 집이 보다 시원하도록 한 것이고, 사람들은 테라스로 편히 지나다닐 수 있게 되었다. 겨울에도 음식의 맛을 최상으로 유지하려면 보온에 신경을 써야 한다. 식당 천장에 낸 둥근 채광창은 햇빛을 실내로 끌어 들여 실내조명을 줄일 수 있고, 또 두 개의 연탄난로는 밤낮으로 실내 온도를 25도 정도로 유지시켜 보일러가 동파되는 것을 막아준다.
 
초계탕 집의 내부와 외부 환경을 풍수적으로 살펴본 결과 이 집이 줄을 서야 밥을 먹는 유명한 식당이 된 배경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다. 
 
①찬 음식을 만드는 입지 조건에서 골짜기의 평지를 택했다. 계곡은 바람이 거세어 생기가 머물지 못하니 살림집으론 적당치 못하다. 하지만 찬 음식을 만들기는 좋은 입지이다. ②연못을 파고 그 위에 지은 집은 대류작용이 생겨 주변보다 낮은 기온을 생태적으로 조성해 준다. ③비록 평지지만 계곡물이 굽어 흐르는 곳이라 평지룡의 지기가 장한 곳을 택하였다. ④연화부수형의 명당이라 빈천한 집안에서 훌륭한 인물이 태어나듯 보통의 사람들이 황제의 대접을 받는 곳이다. ⑤건물을 서향으로 놓은 것은 지맥의 흐름에 역행하나, 곡살(谷殺)을 피할 수 있는 유리한 좌향이다. ⑥동쪽에 실제 지네가 많이 사는 지네를 닮은 산이 있어 닭이 번성할 요건을 갖춘 터이다. 닭이 잘 되려면 반드시 지네산이 있어야 한다. ⑦‘양택삼요’로 보아 계산대의 위치가 좋고, 방과 홀의 위치가 좋아 손님들이 초계탕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질 수 있다. ⑧가상(家相)에서 특별히 흉한 점이 없다는 것은 이 집에 어떤 흉한 징조가 서려 사람의 마음을 불안케 하는 요소가 없다는 뜻이다. 그 집을 다녀오면 기분이 좋다고 생각 들게 하는 것이 장사가 잘 되는 필수조건이다. ⑨김 사장의 본명궁은 이궁(離宮)인데, 화초와 체리색 바닥재가 운기를 상승시켜 준다. ⑩실내에 걸린 남매 사진은 4대를 넘어 5대 째 초계탕을 가업으로 전수시키려는 김 사장의 의지가 담겨있다.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는 부모가 되겠다는 각오뿐만 아니라 훗날 이 자식이 초계탕의 대를 잇게 될 것임을 손님들에게 미리 알리는 것이다. ⑪실내의 저울은 음식을 진솔하게 만들고 남을 속이지 않겠다는 기(氣)를 손님에게 전달시켜 주는 비보물이다. ⑫주차장의 거북바위는 장수의 기를, 무지개를 닮은 홍예교(아치교)는 두둥실 하늘로 올라가는 기를 선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