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踏山 일자 : 2010.04.25.일.08시
☞踏山 장소 : 김제시 벽골제에서
☞踏山 지도
☞踏山 사진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지평선이 하늘과 이마를
마주대고 있는 땅.
동진강 다리를 건너니
바로 김제 땅이다.
호남평야의 대명사..!!!
김제 만경평야다.
큰 땅덩어리를 가진 나라들이야 흔한 이름이지만,
조선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땅이 아니던가.
멀리 보이는 풍경도 동쪽이나 서쪽으로는 막힘없는 들판이
정말 놀랍게도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김제지역은
해발 50m 미만의 구릉 몇 개를 제외하면
동진강과 원평천,
만경강 주변이 온통 드넓은 들로 이루어진
호남평야의 중심지다.
그 중에서도
만경평야는 북쪽의 만경강과
남쪽 동진강 사이의 망망대해처럼 펼쳐진
들판지역이 땅 전체의 50%이상이 논이라고 한다.
‘징게 맹갱 외에밋돌’이라고
불리는 김제 만경평야가
곧
호남평야의 일부였다
'징게멩게 외에밋돌'이라는
표현에서 '외에밋돌'이라는 말은 '너른 들' 즉 평야를 일컫는 말로
곧
'김제 만경 너른들'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유적지 안으로 들어서니 날아갈 듯 서있는 2층 누각이 눈길을 끄는데 바로 단야루다.
단야루 외에도 단야각, 단야로 등 단야에 관한 전설이 곳곳에 즐비하여 흥미를 끌었다.
이 벽골제에 얽힌 전설 중에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있으니 바로 단야낭자 이야기다.
통일신라 제38대 원성왕 때의 일이었다.
서라벌에서는 토목기술자인 원덕랑을 파견하여 벽골제를 보수하게 하였다고 한다.
원덕랑은 김제태수의 집에서 묵으며 벽골제 보수공사를 하고
태수의 딸 단야가 아버지를 돕다보니 어느새 그를 사모하게 되었다.
그런데 공사 중에 벽골제가 무너지는 큰 사고가 발생하였다.
근처에 있는 용추에는 청룡과 황룡이 살고 있었는데
큰 공사에는 용추에 아리따운 처녀를 제물로 바쳐
용의 노여움을 달래야 공사가 순조롭다고 하는데
제물을 바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공론이 돌았다.
김제태수는 제물로 바칠 처녀를 찾게 되었다.
마침 이때 원덕랑의 약혼녀인 월내가 멀리
서라벌고향에서 공사현장까지 찾아오게 되었다.
김제태수는 딸이 원덕랑을 사모하는 것을 눈치 채고 있던 터라
둘 사이를 맺어주고 월내를 용의 제물로 바치기로 작정하여 계략을 세웠다.
이를 알게 된 단야는 고민 끝에 아버지의 살인도 막고,
원덕랑이 월내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면 더없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스스로 용의 제물이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단야의 효심과 희생적인 사랑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이곳에 단야각과 단야루를 세웠으며 영정도 모시게 되었다는 것이다.
'^*^----명 산(踏山) > 仁 山 風 水 踏 山 記'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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