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풍광에 취해 머물렀던 곳이다.
전남 화순지역의 대표적인 정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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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화와 당쟁의 시대를 살다간 송정순은 이곳에서 피폐해진 당시 정치현실을 개탄하고
속됨없이 은거하기 위해 지었다.‘물염’(勿染)은 그대로 ‘속세에 물들지 않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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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 방랑생활도 멈추게 한 적벽 30리 비경 물속에 잠겨
1970년대 광주시는 인구 50만이 넘어서자 동복수원지를 마련했다.
영산강 유역의 도시가 섬진강에서 헌혈 받은 셈이다.
화순 동복면 연월리와 이서면 서리 사이 협곡에 댐이 축조됐다.
이 때문에 굽이돌면서 멋진 경치를 자아
냈던 적벽강 30리는 호수로 변했다.
동복댐은 1차(1968∼1970년)공사 때
수능력 360만톤 규모였다가 1981년 2차
공사로 670만톤으로 늘었다.
1984년 3차 확장 때 댐 높이가 19.5m에
서 44.7m로 높아져, 만수능력 9,200만톤, 1일 취수량 32만톤,
수몰면적 6.6㎢에 달했다.
이서면 서리, 월산리(월평·장월), 보산리(보암·난산),
장학리(장항·학당), 창랑리(창랑·물염),
도석리(석림·석보·전도), 북면 와촌·다곡리 일부가
물속에 잠겨 800 세대가 떠났다.
도석리 444-2번지에 있던 이서면사무소도
야사리 태평동 652-1번지로 옮겼다.
퇴적암 계통 점판암벽의 감입(嵌入)곡류 구간은 비경이었다.
1519년 기묘사화 후 동복에 유배 중이던 최산두가
중국 소동파가 선유했던 적벽에 버금간다 하여 ‘적벽(赤壁)’이라 명명했다.
노루목(獐項·장항)을 비롯하여 물염·보산·창랑적벽 7km, 389,017㎡가
1982년 전남기념물 제 60호로 지정됐다.
정암수(1534∼1594)가 지은 창랑정(滄浪亭)과
송정순이 건립한 물염정(勿染亭)을 비롯하여
정지준이 세운 망미정(望美亭)과 강선대, 박재만의 만성정,
이언휴의 독락당, 송석정, 적벽정, 환학정,
백학정, 고소대, 탁영정도 있었다.
김삿갓(병연)은 이곳 결경에 방랑을 멈추고, 1863년 생을 마쳤다.
석보에는 ‘방석원(方席院)’이란 원집이 있어 길손의 쉼터 역할을 했고,
시장과 사창(社倉)도 위치했다.
들모실(野沙) 193번지는 규남 하백원(1781∼1844)의 태생지다.
규남은 동국지도와 만국전도, 자승차(양수기), 자명종을 발명했다.
석파 나경적의 영향이 컸다.
2003년 말 옹성산(甕城山·573m) 자락
노루목적벽의 서편 장항리 80번지에 망향(望鄕)동산이 조성됐다.
정자와 함께 탑·단·마을유래비를 세우고, 해마다 모임을 갖고 있다.
지난달 21일에는 김삿갓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도 가졌다.
묘치에서 만나 답사를 동행했던
학탄마을 출신 정규철 선생님이 펴낸 산문집을 펼친다.
고경명의 ‘적벽의 새벽 안개(赤壁晨霞·적벽신하)’를 읊어본다.
둘러 있는 붉은 층벽 볼수록 아름다운데(赤城明滅露凝華·적성명멸로응화)
아침 햇살에 비치는 안개 더욱 좋구나(朝日微升疊綺霞·조일미승첩기하).
푸른빛 온 봉우리 비단처럼 붉은데(千點碧峯紅錦裏·천점벽봉홍금리)
어떤 도인 하염없어 지팡이 짚고 섰네.(道人扶杖岸烏紗·도인부장안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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