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넘는 박달재
울고넘는 박달재
박달재에 들어서니
휴계소에서 울고넘는 박달재노래가 계속적으로 흘러나온다.
박재홍 (朴載弘 )
( 1924년 4월 7일 - 1989년 3월 21일 )
박재홍 (朴載弘 )
(1924년 4월 7일 - 1989년 3월 21일)
대표작
울고 넘는 박달재, 유정천리, 경상도 아가씨, 물방아 도는 내력. ........등 600여곡.
출생지는 경기도 시흥군이지만
어린 시절 함경남도 함흥 시로 이주해 성장한 것으로 전한다.
가수로 데뷔하기 이전 광복 전후에는
전기기술자로 일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1947년 무렵 가수선발대회 당선을 계기로 데뷔해
194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인기 가수로 활동하며
많은 히트곡 음반을 발표했고 한국전쟁 동안과
그 직후 1950년대 중반에는 피난지 부산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신곡 발표 중단 이후에도 공연과 방송 출연 등으로
원로 가수로서 무대 활동을 했다.
활동사항
데뷔곡은 1948년 오케 레코드에서 옥두옥과 함께
듀엣으로 발표한 「눈물의 오리정」이며,
이후 서울 레코드ㆍ고려 레코드ㆍ도미도 레코드ㆍ미도파 레코드ㆍ신세기 레코드 등에서
전속가수로 활동하며 많은 인기곡을 발표했다.
대표작으로는 「마음의 사랑」(1949년),
「울고 넘는 박달재」(1950년),
「물방아 도는 내력」(1953년),
「경상도 아가씨」(1955년),
「휘파람 불며」(1957년),
「유정천리」(1959년) 등을 들 수 있다.
당초 영화 주제가로 발표되었던 「유정천리」는
1960년 대통령 야당 후보였던 조병옥의 갑작스런 타계와 관련해
대중의 자발적인 추모 개사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1940년대 인기 가수였던 백년설의 뒤를 이어
구수함과 포근함이 느껴지는
서민적 대중가요로 인기를 모았고,
담백하면서도 힘 있는 창법으로 주목을 받았다.
박달도령과 금봉낭자
박달도령과 금봉낭자의 애닮픈 사랑이야기가 있는 이등령
이제는 박달재로 바꿔었다.
울고넘는 박달재의 노래비
좋은 가사말을 많이도 썼지만 친일행적이 기록되여있는
반야월작사가
어렸을적 한번쯤은 입에 오르내린적이 있는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넘는 우리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굿은비에 젓는구나...
왕거미 집을짓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울었오 소리쳤오 이가슴이 터지도록
구슬프네요...
옛날에는 노래니까 하고 그냥 아무생각없이 불려는데
이제는 가사를 음미하니
구슬푸고 애절한 생각이 드네요...
고려 고종때 박달재를 공격해온 박달령전투에서 거란족의 10만대군을 섬멸했다는
김취려장군을 기리기 위한 유적지라고 붙여있다.
김취려장군(1172~1234)
월동준비에 한참인 박달재의 박달령휴계소
박달령의 뒷안길에는 벌써 얼음이 얼었네요....
박달도령은 과거는 온데간데없구...
금봉낭자만 생각하니 과거급제가 되겠누....
정신차려....ㅋ
박달도령은 맨날 이 놈만 잡고 금봉낭자만 생각허니
과거는 커녕......
알라뷰.....
사랑혀.....
박달도령....
박달령휴계소에 목각인형들이 우스꽝스럽지유...
어짤수업씨유...
박달령 홍보용인께유....ㅋㅋ
인산찍고
인산쓰고
2016.12.03.울고넘는 박달령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