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오는 초의선사 탄생지
속성은 장씨이며, 자 중부, 호는 초의이다.
보통 초의선사라고 불린다.
1786년 전라남도 무안에서 출생하였으며,
강가에서 물놀이를 하다 익사할 뻔 하였으나 지나던 스님이 구해주었다.
16세에 남평 운흥사에 들어가 민승의 제자가 되었으며 승려가 되었다.
그는 수행생활과 함께 차에 대한 조예가 깊었다.
정약용에게서 유학과 시문을 배우고 신위 김정희와 친교가 깊었다.
그 후 해남 두륜산의 일지암에서 40년 동안 지관을 닦고,
서울 봉은사에서 화엄경을 새길 때 증사가 되었다. 1866년 80세에 입적하였다.
저서에 <초의집><선문사변만어><이선내의>가 있으며,
1828년 지리산 칠불암에 머물면서 지은 차서인<다신전>이 있다.
다신전의 내용은 차잎따기,차만들기,차의 식별법,차의 보관,물을 끊이는 법,
차를 끊이는 법,차를 마시는 법, 차의 향기,차의 색 등
20여가지 목차로 상세하게 다룬 책이다.
차를 만들어 널리 폄으로써 전래의 차 문화를 중흥시켰다.
24세 연상이어서 스승으로 모셨던 정약용과 동갑으로 승속과 유불의 경계를 넘어
누구보다도 친밀한 정을 나누었던 김정희와의 사귐에서도 학문과 예술,
차의 향기가 함께 했음은 물론이다.
초의선사는 귀양살이 하는 김정희를 만나러 제주도를 다녀오기도 했을 만큼
초의선사는 귀양살이 하는 김정희를 만나러 제주도를 다녀오기도 했을 만큼
서로 터놓고 도탑게 지냈다.
김정희가 말년에 초의선사가 보낸 차를 받고 써 보낸 걸작 ‘명선(茗禪)’이 대흥사에 전해온다.
초의선사는 중년이후 큰절의 번거로움을 피해 일지암을 짓고
40여년간 은거하며 차와 더불어 지관(止觀)에 전념하다가 81세로 입적했다.
눈오는 날
초의 선사 탄생지에서 바라본 봉수산 정상
안전백끽 조주다
수리뇌염 범지화
갈후이문 음개점
춘풍하처 부산가
눈앞엔 조주선사가 마셨던 순한 맛의 차를 달이고
순안엔 범지화를 꼭 쥐고있다네(연꽃 : 이심전심으로 마음을 전하다)
불경 한 게송 큰소리로 읊고 난 뒤
귀달린 고운 찻잔으로 한모금씩 그 맛을 즐긴다네
네가 거처한 산집은 남향 받이 아니지만
그래도 도처엔 따스한 봄바람 가득하다네
본 시는 추사 김정희가 1852년 추사가 67세 되던 해 마지막 귀향살이(함경남도 북청)에서
돌아와 서울에 들어오지 못하고 아버지 산소가 있는 과천에 머문 첫날에 초의를 불러와
함께 머물러 보려고 초의에게 보낸던 간절히 친구를 그리는 시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