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 공 간/조은글은 감동과 웃음으로..

노 전대통령 서거 후 관광객 발길 끊겨 "썰렁"

仁山 -세발낙지 2009. 6. 29. 15:10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관광객 발길 끊겨 ‘썰렁’

 

경북 포항이명박대통령생가 현지 취재

▣ 글 인상준 기자 sky0705in@dailysun.co.kr

2009-06-09 11:12:01

이명박 대통령의 고민이 날로 깊어가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20%이상 차이가 나던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역전됐다. 이 대통령의 지지율도 하락했다. 야권에선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이 ‘정치적 타살’이라며 이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문책을 요구하고 있다. 국면 대전환이 없다면 10월에 치러지는 재보선은 물론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패배가 불 보듯 뻔하다. MB정권의 최대 위기다. 역전된 지지율을 반영하듯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김해 봉하마을을 찾는 조문객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 반면, 이명박 대통령의 생가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끊겼다. 은 포항에 있는 이 대통령의 생가를 직접 찾아 현지 분위기를 알아봤다.

지난 6월 1일 월요일 오후 4시. 이 대통령의 생가가 보존돼 있는 포항 북구 흥해읍 덕실마을을 찾았다. 덕실마을에 들어서자 대통령 생가를 가르키는 이정표가 눈에 띄었다. 마을 입구에는 특이하게 바리케이트가 설치돼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던 상가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 닫힌 포장마차 식당 앞에 진열된 청와대 만찬주, 소백산 동동주 병에도 먼지만 쌓여가고 있었다. 청와대 만찬주는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만찬을 위해 포항산 막걸리를 가져와서 먹었던 것이 계기가 돼서 만들어진 술이다. 마을은 썰렁했다. 을씨년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 대통령의 생가는 큰 길에서 골목길로 50M쯤 들어가서 위치해 있었다. 마을입구, 골목길과 마찬가지로 생가도 한산했다.


포항에 있는 이명박 대통령 생가. 지금은 주인이 바뀌고 새로 건물을 지어 옛모습을 찾기 힘들다.



생가는 보존되지 않고, 현대식 단층 슬라브 건물로 건축되어 있었다. 대신 예전 모습을 재현한 모형이 만들어져 있다. 이 전시 모형을 보면 이 대통령의 어린 시절을 느낄 수 있다.

그 뒤편에 기념품을 파는 건물이 있고, 그 옆 건물 벽면에 이 대통령의 삶을 소개하는 전시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 대통령의 학창시절, 한일수교 반대 운동으로 재판받는 모습, 현대건설사장 시절 고 정주영 회장과 함께한 사진 등이 설명과 함께 전시돼 있다. 기념품을 파는 주인아주머니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이후 처음 오신 손님”이라면서 “얼마 전 까지만 해도 평일에도 1백명 이상 관광객들이 찾아왔다.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소식이 전해진 이후 관광객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이어“이곳에서 이 대통령께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후일 집을 매입하고 살고 있는데, 마을을 지나는 지관이 찾아와 ‘큰 인물이 태어날 명당 터’라고 일러주었다. 그것 때문인지 이 대통령 같은 분이 탄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풍수지리서 ‘명당’의 저자 김성수(실혈명당연구소장)씨에 따르면 “집은 남향집에 동남형 대문으로 동사택(東四宅)의 위치해 배합하고, 집에서 바라보면 청룡의 기백이 힘찬데다 백호가 잘 감싸고 있는 명당 터”라고 분석했다.

6.25때 폭격으로 소실되어 텃밭으로 사용하고 있던 집주인은 풍수지리가로부터 명당 터라는 말을 듣고 그곳에 벽돌 슬라브 건물을 세운 것이다.

김성수 씨는 “마을 위쪽에 있는 입향조인 11대조를 모신 재실 이상재(履霜齋) 뒷편 국골 뒷산에는 9,8,7대 조상들의 무덤이 있다. 그 중 9대조의 쌍분 중 여자쪽 무덤의 유체가 기를 받을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어 명당이다. 특히 집성촌인 덕실에서 서쪽으로 고지산 허리를 타고 넘어 비학산이 보이는 산 자락에 위치한 이 대통령의 증조부 이규수(李圭秀) 내외의 묘소가 있는데 이 묘소가 대명당의 형국을 갖췄다”고 설명했다.

그는 양택과 음택이 조화를 이뤄 이 대통령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실제 비학산은 명당이 있는 명산으로 유명하다.

마을입구 상점을 운영하는 주민 A씨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겼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생가에는 들리지 않고 막걸리를 마시고 가는 것이 고작이다. 아무래도 노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 충격으로 인해 관광객들이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면서 “세상이 잠잠해지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 올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2007년 이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 포항시는 대통령 생가를 가꾸기 시작했다. 특히 포항시는 당선이 확정되면서 고향마을인 덕실마을 인근 도로에 안내 간판을 설치하고 대통령의 사진과 그림이 새겨진 엽서와 캐릭터를 4만장 이상 만들어 관광객들에게 배포했다. 이 대통령 취임 후인 2008년 2월부터 많은 관광객들이 몰렸다. 관광객들이 많을 때는 한 달에 수 만 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다녀가기도 했다. 그랬던 것이 차츰 수가 줄어들었다. 취임 후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과 ‘강부자내각’ 등 국민들의 비판을 받으면서 더욱 줄었다고 한다. 그러다 최근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관광객의 발걸음이 거의 끊겼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민심을 잃으면서 자연스레 생가를 찾는 관광객들도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더욱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돌리게 한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봉하마을 추모기간 후에도 조문행렬 끊이지 않아

봉하마을의 분위기는 이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포항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김해 봉하 마을에는 추모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49제때까지는 이런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해 퇴임 후 노 전 대통령은 고향인 봉하마을로 내려왔다. 지난 연말 시작된 측근과 가족들의 비리혐의가 알려지면서 조금씩 위축됐다. 그러다가 결국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감했다. 서거 전 비판을 한 몸으로 받았다. 연일 쏟아지는 비난에 청렴성을 강조했던 노 전 대통령의 이미지는 한 순간 사라졌다. 하지만 서거 이후 상황은 반전됐다. 그의 살아온 발자취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서민대통령’‘바보 노무현’‘원칙주의자’이미지가 살아났다. 온 국민은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추모 기간 동안 전국적으로 500만 명의 추모행렬이 이어졌다. 추모기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유골이 안치된 봉하마을 사찰에는 하루에 수백 명의 인파가 몰리고 있다. S

[인상준 기자] sky0705in@daily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