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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대통령 묘소

仁山 -세발낙지 2016. 12. 3. 15:35



박정희대통령 묘소




국립 현충원

 박정희대통령과 육영수여사 입구 표석





 묘비석





1917년 11월 14일 (경북 구미시) ~ 1979년 10월 26일 (향년 61세)


출생일1917. 6. 15, 경북 선산
사망일1979. 10. 26, 서울


         

     대한민국의 제5·6·7·8·9대 대통령.

1961년 소장으로 제2군 부사령관에 재직중 청년장교들과 함께 5·16군사정변을 주도했다.

같은 해 7월 군사정변의 최고권력기관으로

입법권·사법권·행정권을 장악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

 취임해 2년 7개월간의 군정을 실시했으며,

1962년 3월 윤보선 대통령의 사임으로

그때부터 대통령 권한대행도 함께 맡았다.

 1963년 8월 대장으로 예편하고,

1963년에 창당된 민주공화당에 입당해 총재에 추대되었다.

1963년 제5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래,

 제9대에 이르기까지 장기 집권을 이뤘다.

경제발전에 집중했으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유신을 선포했으나

1979년 측근에 의해 피격, 사망했다.



호는 중수(中樹).


가난한 농부인 박성빈(朴成彬)과 백남의(白南義) 사이에서

5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1937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문경소학교(聞慶小學校)에서 3년간 교직에 몸담았는데,

일본인 시학관(侍學官:지금의 장학사)과 충돌해 스스로 사직했다.

 이후 장래를 고민한 끝에 1942년 만주에 있는

신경군관학교(新京軍官學校)에

입학해 2년 과정을 수석으로 수료한 다음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

 1944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만주군 소위로 임관했다.

8·15해방 이전까지 주로 관동군(關東軍)에 배속되어 중위로 복무했다.




참배객 없는 쓸쓸한 박정희대통령과 육영수여사의 묘소 



풍수지리가 지창용씨가 소점한 자리라고 하는데

작금 이시대에서 바라본 자리라고는 너무 비참하지 않은가

박근혜 탄핵위기....


동작동 현충원은

 풍수상으로 흔히 ‘봉황포란형(鳳凰抱卵形)’으로 거론된다.


어떤 땅을 동물의 형상으로 비유하는 것을 풍수이론상

물형론(物形論)이라고 하는데,

 . 현충원이 있는 동작동의 이름에 이미 ‘봉황’이라는 글자가 들어 있어,

현충원이 입지할 때부터

이 터가 봉황이 알을 품은 자리라고 얘기되어 왔다.


한편 스스로 지칭하는 육관손석우 도사는 터라는 책에서 밝혀듯이 

 이자리가 

명당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지금 이 시국을 보면

다시한번 그 책이 상기된다.

 




 




박정희 대통령묘소에서 바라본 안산의 모습은 앞으로는 장군제1묘역이고

뒤로는 한강을 굽어본다... 




 장군제1묘역에서 바라본 박정희묘소





 




 




 




 장군제1묘역에서 바라본 한강모습





 장군제1묘역에서 바라본 장군제3묘역쪽 좌청룡 산세

우측 소나무로 가려진곳이 김영삼대통령묘서이다.




 




 박정희대통령 영구차가 보존되여있다.









 


인산찍고

인산쓰고


2016.12.03.토.어려운시국에 하야,퇴진,탄핵의 촛불이 되여...